서울패션위크엔 없는 것들
안냐세요~ 어제 밤잠을 설쳤다가 오늘 넘 늦게 일어났네요. 요즘 PT를 시작했는데, 운동한 날은 머리가 멍하고 근육이 아파 행동이 느려지면서 잠도 잘 못잔답니다…하아..
어제는 뉴욕에서 라프 시몬스(Raf Simons)의 캘빈클라인 남성 쇼가 있었답니다. 라프 시몬스의 남성복 내의 입지는 정말 ‘굉장’해요. 그는 언제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서는, 이걸 뚜렷하고 확고부동한 반복으로, 그러나 놀랄만큼 다채로운 변주로 연주하는 능력을 가졌답니다. 그의 쇼는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어제 쇼를 보다보니, 지난 시즌 서울패션위크가 떠오르더군요. 저는 지난번 서울 패션위크가 직접 쇼를 보고, 리뷰하는..에디터로서 참가한 첫번째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그 때 해외 패션쇼랑 다소 다른 우리 쇼에 대해 어떤 부분에선 놀라움을, 또 어떤 부분에선 실망감을 느꼈죠. 오늘은 그간 꼭 하고 싶었던 얘기를 좀 모아서 해볼까 해요. 서울패션위크에 있어야 하지만 없는 것들이랄까요?
세상엔 없어도 되는게 있고, 없으면 쪽팔린 게 있는데요. 없으면 쪽팔린 게 문제겠죠. 서패위에 정말 이런 게 하나 있어요.
1.한국은 ‘패션쇼 리뷰’가 없는 나라
제가 제일 놀랐던 건, 아무도 디자이너의 리뷰를 다루지 않는다는 거에요. 저처럼 처음 패션위크에 참석한 사람들이라면, 또 그들이 바이어건 에디터건 제대로 된 패션 전문가라면, 쇼를 보고 괜찮은 디자이너가 있을 때, 저 디자이너의 자취를 한번 훑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죠. 지난 시즌엔 어떤쇼를 했을까. 저 친구는 대체 어떤 취향의 사람인가를 알고 싶어지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리뷰가 너어무나 가뭄에 콩나듯 해요.
리뷰가 왜 중요한가 하면, 패션쇼는 언어로 이뤄진 나레이션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에디터가 쓰는 리뷰는 앞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쇼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전문가들이 쇼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에요. 어제 있었던 라프시몬스의 쇼에 제가 직접 참가하지 않았어도 쇼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에디터들의 좋은 리뷰가 넘쳐나는 덕인 거죠. 사진만으로는 다 이해되지 않는 현장의 무드, 소재의 특성, 또 디자이너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그의 생각 들이 모두 그 리뷰안에 들어가 있으니까요.
양질의 리뷰가 있는 곳도 있기는 해요. 한국섬유신문요. 단지 산업 전문지에서 쇼의 영역을 100% 커버하기 어려운 탓에 리뷰 양이 많지는 않아요. 또한 군데 리뷰가 백퍼 차곡 차곡 쌓여있는 곳도 있어요. 무신사요.여긴 양적 아카이브는 확실합니다. 근데 슬프게 리뷰는 4줄 정도가 다에요..
그나마 리뷰 비슷한 걸 쓰는 친구들은 일부 블로거들인데요. 아무래도 젋고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정론지의 역할을 하긴 힘든 수준의 글들을 쓰죠.
우리나란 언론들이 즐겨 다루는 건 오직 하나. 연예인 누구가 왔었네 같은 거에요. 이건 좀 아니지 싶네요. 어떤 문화행사건 간에 남의 전시회나 뮤지컬에 갔다와서 기사를 쓴 다는 사람이, 그 작품에 대해 논하지 않고, 누가 왔더라를 쓰는 일이 없잖아요. 근데 왜 패션쇼에선 그러고 있을까요? 설마 몰라서..? 아니면 직업의식보다 조회수가 중요해서?
뭐였건간에 싹 다 반성했음 해요. 세상엔 쪽팔리는 일이라는 게 있고, 그런 건 안하는 사람들을 지성인이라고 하는 거에요. 기자는 정말 지성인이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적어도 디자이너에게 좌석 티켓을 받았다면, 바이어도 아닌데 왜 티켓을 받았는가 그 의미를 생각해보세요. 설마 그게 기자이기 때문에 누리는 특권같은 거라고 생각하나요? 먼저 자신이 할 것을 하고 부가적인 걸 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서패위의 하나 신기한 점은요. 사진 시스템은 어마 빠르다는 거에요. 해외 쇼는 아무리 유명한 언론이라도 자기 포토가 있어야만 사진을 얻을 수 있어요. 즉, 쇼 주최측에서 사진을 제공하진 않는단 얘기에요. 그런데 서패위는 주최측이 주도적으로 언론들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사진을 제공해줍니다. 11시 쇼면 끝나고 1-2시간이면 업로드되어요.
이건 제대로 된 에디터라면 참 좋아했을 시스템이에요. 왜냐하면 해외의 경우 리뷰는 거의 경쟁적으로 실시간으로 올라오거든요. 사진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데, 리뷰는 영원히 올라오지 않는다….이런 상황에서 K패션이 해외로 나가주길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리뷰를 영문판 중문판으로 만들어 뿌려도 모자랄 판인데요.
“한국은 패션쇼는 열심히 하지만 아무도 리뷰하지 않는 나라” <— 정말 안 이상한가요?
누가 그러시대요. 진짜 한국패션 지금 해외에서 알아주냐구요. 제 대답은 “예스”에요. 알아준다는 게 무슨 뜻인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요즘 외신의 한국 패션 기사 비중은 전에 없이 많아졌어요. 심지어 우리나라에선 다루지 않는 우리 디자이너 기사들을 해외 기사에서 보는 경우도 더러 생기니까요. 근데 이러다가 언젠가 해외 언론에 “한국은 리뷰도 없는 나라”라는 토픽을 보게 될까 걱정인 1인이랍니다.
2.메이크업 & 헤어 데이타의 부재
다음 2개는 없어서 쪽팔린 게 아니라, 있으면 좋겠는 것들이에요. 패션은 ‘옷’이 아니라 ‘토탈’이니까요.
이번에 제가 서패위 보러 간다고 하니까, 한 중국 친구가 연락이 왔어요. 이 친구도 중국에서 패션 사업을 합니다. 이 친구는 저보고 그런 말을 하더군요. ‘너 혹시, 한국패션쇼에 나오는 메이크업 사진 구할 수 있으면, 그걸로 한국 메이크업 트렌드 북 만들 수 있어?’
그 친구는 한국 화장품이 하도 유행하니까, 한국 쇼 메이크업 트렌드가 중국에서 팔릴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 때만 해도 상황을 잘 몰랐던 저는 ‘거럼~ 좋은 생각인데! 아마 가능할거야~’라고 자신있는 대답을 했답니다. ㅋㅋㅋ
왜냐면 해외 패션쇼에선 백스테이지의 메이크업 & 헤어가 굉장히 중요한 또 하나의 데이타에요. 패션쇼는 옷잔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모든 헤어아티스트들의 잔치이자, 모든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잔치거든요. 이들이 하는 메이크업과 헤어가 트렌드를 만들어가죠. 제 포토도 정말 눈화장까지 어떻게 하는지 아주 디테일한 사진들을 찍어 보내온답니다. 거의 디자이너당 100 컷-200 정도의 별도 메이크업 헤어 사진을 받아요.
수많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과 헤어아티스트들이 다양한 디자이너들과 몇달간 협력해서 발표하는 모든 트렌드 자료들이 여기 녹아있죠


근데 한국에선 아무리 구하려 해도…어디에도..이런 사진은 없더군요. 사실 이게 메이저 도시가 아니면 좀 구축하기 힘든 데이타이긴 한데요. 하지만 한국은 K뷰티가 지금 넘나 화제이고, 적어도 우리 패션위크 이름또한 ‘헤라 패션위크’라고 화장품 회사가 크라운 스폰서잖아요. 있음 좋겠단 생각이 절로 생기죠. 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커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디자이너들이 각자 자기 헤어와 메이크업을 고용하기엔 너무 경제적 여력이 없다구요. 아, 이 얘기 너무 슬픈데요. 실은 해외도 마찬가지랍니다. 아주 탑 디자이너가 아니면, 헤어와 메이크업은 거의 협력작업, 콜라보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요. 대신 그 헤어나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쇼를 통해 또 한번 조명받을 기회가 생기니까요. 쇼에 패션관계자 뿐 아니라, 메이크업이나 헤어 관계자들도 온다면 그만큼 더 풍성한 쇼가 되지 않을까요?
3.스타일리스트의 부재
음….이것도 좀 경제적인 문제이긴 한데요. 우리나라 쇼는 스타일리스트가 없는 티가 좀 많이 나는 편이에요. 스타일리스트는 뭐하는 사람인가 하면,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쇼에서 뽀다구 나도록 연출하는 사람이랄까요? 액세서리, 레이어링, 이런 것들을 관장하고, 헤어, 메이크업과도 긴밀하게 조율하죠.
베트멍 쇼 또한 그 스타일리스트인 Lotta Volkova 가 없었다면 뎀나의 힘만으론 그렇게 센세이셔널하기 어려웠을 거에요.

보통 탑 디자이너라고 해도, 이들이 스타일리스트 없이 쇼를 열게 되면 옷만 입고 걸어나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겨울 쇼인데도 다리는 그냥 희멀겋게 드러나거나, 특별한 이유도 없이 블라우스를 바지나 스커트 안에 집어 넣지 않고 빼어입은 채 등장하는 경우가 많죠. 그렇게나 좀 다른 영역이에요, 스타일링과 디자인은. 매장은 디자이너 혼자 다 할 수 있는데요. 많은 걸 압축적으로 한번에 던져야 하는 쇼에선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죠.
우리가 해외 쇼를 보고좀 ‘간지난다’고 하는 이유는 뭐냐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코디가 이뤄지기 때문인데요. 어제 라프 시몬스 쇼를 몇개 볼까요?




이건 분명 스타일리스트의 터치가 들어간 쇼에요. 모자, 우산, 부츠, 소품, 뭐 하나 꽉차지 않은 게 없으니까요. 거기다 저 복잡한 레이어링들, 저건 디자이너 혼자 할 수 있는게 아니랍니다. 이게 디자이너들이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할 돈이 없어 그런다니 좀 가슴이 아프긴 하네요. 하지만 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커요. 이건 어떻게 좀 콜라보가 안되려나요?
패션쇼 시스템은 지금 전세계적으로 들썩들썩하고 있어요. 일단 디자이너들이 점차 마이크로화되는 데 비해 쇼 비용이 너무 커서 문제구요. (보통 수백만원, 베트멍급 3천만원, 탑 디자이너들 억대로 든다고 해요) 그 시스템이 화려하긴 한데 그 만큼 돌아오는게 작아서 또 문제기도 해요. 슈프림은 패션쇼를 안해도 잘만 나가잖아요.
그래도 아직은 이 시스템이 여전히 사람들을 불러모은다는 걸 부정할 수 없죠. 지금 오히려 패션쇼를 BtoC 행사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생겨나죠. 오죽하면 동경패션위크의 크라운 스폰서가 아마존 재팬이겠어요 ㅋㅋ. (나중에 일본쪽 동향이나 아마존 패션 얘기는 몰아서 쓸께요. 잼난 거 많음)
오늘 얘기 쓸까 말까 좀 고민했는데, 제가 아예 지금 처럼 사정 잘 모를 때 얘기하는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제 소명은 그냥 달라보이는 걸 달라보인다고 말하는 거 같아요. 그런건 오히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쿨하게 말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야 이런 의견들이 미래에 여건이 나아지고 사정이 허락될 때 발전의 방향을 심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오늘 좀 심각했나요? 담주엔 꿀잼이야기만 쓸께요~
존주말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