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건 프린트” 시대
캐주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뭘까요? 아마 티셔츠일 겁니다. 요즘엔 너무도 다양한 티셔츠가 출시되고 있죠. 디자인도 다양하고, 디테일도 굉장히 세분화되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티셔츠의 백미는 역시 프린트가 아닐가요? 우리나라에선 ‘티셔츠 프린트’라 부르고, 해외에선 ‘티셔츠 그래픽’이라 부르는 요 영역에 슬슬 변화가 불고 있답니다.
과거엔 브랜드 로고를 찍거나, 사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별 의미없는 문구들을 이쁘자고 찍기도 했었어요. Travel, Journey, Love, Vintage 따위의 영문들이죠. 하지만 최근엔 이런 문구에 영혼이 있어야 합니다. 즉 지금 필요한 건 ‘슬로건(Slogan) 프린트’에요. 즉, 뭔가 소신어린 메세지가 있어야 한단 얘기죠.
얼마 전 슈프림(Suprim)에서는 소신쩌는 슬로건의 프린트를 선보였어요. 바로 요겁니다.
뭐라고 써있냐면요.
“좀 친구들끼리 모여서, ‘No’라고 말해보는게 어떻겠어. 제발 인종주의자들, 성차별주의자 돼지들, 실세라고 하는 것들, 종교단체들에게 ‘No’라고 말해보자구.”
그 뒤에도, 정치적 이상주의자, 텔레비전, 국수주의 등등에 No라고 얘기하면서, “걔네들한테 ‘FUCK OFF’외쳐 봐, 속시원할 걸”이란 말을 크게 적었답니다.
요런 프린트는 모두의 상식을 대변할 때는 브랜드를 굉장히 지성적이고 고급스러운 걸로 만들어주죠. 이런 프린트로 한 방에 유명해진 친구도 있어요.
바로 피어모스(Pyer Moss)라는 브랜드를 이끄는 흑인 디자이너 커비 쟝레이몬드(Kerby Jean-Raymond)에요. 이 친구는 데뷔컬렉션(뉴욕에서 했답니다)에서 바로 대박을 쳤는데요. 이 때 뉴욕은 백인 경찰들이 천식흑인환자를 마구 연행하다 죽게 만든 일로 분노에 들끓고 있었어요. 이 때 죽어가던 흑인이 ‘I can’t breathe(숨을 못쉬겠어요)’라고 계속 외쳤는데 묵살되었죠. 커비는 자신의 쇼에서 이를 강하게 비판하며 ‘BLACK LIVES MATTERS(검은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에 동참해요.
커비는 이후에도 계속 소신있는 그래픽을 담고 있어요. 이번 시즌도 한번 보실래요? 이번 시즌의 주제는 “Bernie vs. Bernie“(버니 vs 버니)였는데요. 희대의 금융사기꾼 버니 매도프(Bernie Madoff)와 청렴한 정치인으로 존경받는 버니 샌더스(Bernie Saders)의 사진과 ‘탐욕(Greed)’이란 글자들이 프린트에 사용되었죠.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있어서 대중의 상식이 확실할 때, 정치적 슬로건은 아주 성공적이에요.
그러나 꼭 정치적 주장을 담을 필요는 없어요. 미국의 대표적 힙합 브랜드인 후드바이에어(Hood by Air, HBA)는 이번 시즌 좀 새로운 슬로건을 선보였답니다. 이 또한 디자이너의 소신이었어요. 처음엔 갑자기 Pornclub 로고(엄청 큰 포르노 사이트라네요)가 나와서 깜짝 놀랐는데, 뭔가 세태에 대한 디자이너의 의견이 담겨 있음을 보고 이해가 되었죠.




보통 슬로건 프린트라 부르는 건 무의미한 글자가 아니라 ‘의미가 있다’는 의미에요.
이제 좀 더 서정적이고 시적인 슬로건들을 볼께요.
보다 도회적이고 단순한걸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은 정치적 소신이나 세태 비판보다는 다른 의미의 문구를 넣죠. 한번 더 생각하게 하면서 의미를 발견하는 스타일이랄까요? 예를 들면 Acne Studios의 티셔츠 시리즈에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해석하게 해서 생각해볼 거리를 만들죠.
Touch는 ‘건드리다’ 인데 여기 동그라미 친 Ouch는 ‘아얏!’의 의미에요. 누군가의 터치가 누군가에겐 아플 수 있겠죠?
Psychic은 심령의, 초자연적인 무당의, 뭐 이런 뜻인데 동그라미 친 Chic는 멋지단 의미죠. 당신은 이상한 것들에서도 쉬크함을 발견할 수 있나요?
Life는 삶이에요. 여기 동그라미 친 글자는 If, 만약에.. 만약의 삶이 이러하다면..이런 연상작용이 절로 생기죠?
국내에서도 이런 유의미한 슬로건들을 추구하는 브랜드가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는데..딱히 일관된 의미들을 강조하거나 남다른 메시지를 가진 디자이너는 아직 찾지 못했네요. 혹 누가 알고 계시다면 저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그리고 차후 한번 쓰겠지만, 아마 영어로 소신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최근 한글 티셔츠들도 컬쳐샵에서는 예쁘게 나온 것들이 많아 참조하기 좋아요. 이건 좀 웃긴 메시지가 많아서, 나중에 유머러스한 프린트 정리하면서 올릴께요.중요한 건, 무의미한 글자들을 그냥 디자인 디테일로 넣지 않고 디자이너의 지성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요.
낼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