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앤드로지너스, 여자같은 남자
안녕하세요?
와, 오늘은 정말 Acne를 쓸까, Balenciaga Men을 쓸까 고민이 많았답니다. 오늘은 일단 먼저 엊그제 공개된 Acne Studios의 프리폴 컬렉션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해요. 먼저 제게 충격을 준 Acne의 컬렉션 몇 장을 볼께요.
여러분들도 놀라셨을거라 생각해요. 하이힐에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이 모델은 Primal Scream싱어, 55세의 뮤지션 바비 길레스피(Bobby Gillespie)랍니다. 바비 길레스피 스타일은 원래 좀 이래요.
그를 모델로 쓴 조니 조핸슨(Jonny Johansson)은, 자기도 모르게 바비 길레스피를 떠올리며 디자인을 하고 있더라, 라는 말을 했어요. 요즘 아크네 뿐 아니라, 사실 이런 남성상이 많이 보여지죠?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대니시 걸(Danish Girl)에도 이런 미묘한 남주가 주인공이에요.
이런 문화는 요즘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드젠더) 문화로 불리우며 깊게 침투되어 있는데, 패션에서 그 방아쇠를 당긴건, 구찌(Gucci)의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의 2015 추동 컬렉션, 즉, 그의 데뷔 컬렉션이었어요.
바비 길레스피같은 인물이 디자이너의 뮤즈(? 남잔데 뮤즈라고 해도 되나?)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죠. 데이빗 보위(David Bowie)도 사실 비슷한 캐릭터로 디자이너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어왔으니까요.
놀랍게도 이 둘은 다 게이가 아니랍니다. 바비 길레스피는 영국의 유명 패션 스타일리스트 케이티 잉글랜드(Katy England)와 결혼해 아들 둘인가를 두었구요, 데이빗 보위의 와이프 또한 패션계의 전설적 모델 이만(Iman)이에요.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왜 이런 남성상이 뜨는가 하는 이야기랍니다.
패션사에 앤드로지니(Androgyny : 양성구유, 암수 한몸)가 나타났던 것은 일찌기 80년대였답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의 암수한몸이란, 요즘의 ‘여자같은 남자’가 아니라 ‘남자같은 여자‘로 집중되었어요.
80년대 최고의 모델 중 하나였던 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는 그런 매력을 폭발시킨 존재랄까요? 당시의 앤드로지니 미학이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에 또 하나 잊지못할 뮤지션이 있죠. 스윗드림(Sweet Dream)이란 히트곡(지금 들어도 세련되니 들어보세요)을 냈던 유리드믹스(Eurithmics) 도 당시 남장 여자 스타일로 큰 화제가 됐어요.
물론 당시에도 여자같은 남자가 있긴 했어요. ‘Karma Cameleon’을 불렀던 보이조지(Boy George)도 그랬고, 전설의 로커 프린스(The Prince) 또한 가끔 여자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곤 했으니까요.


그래도 80년대의 대세는 역시 ‘남자같은 여자’였죠. 이것이 하나의 문화적 코드였고, 선도적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2017년 지금 이 순간. 문화적 코드와 충격이 되는 앤드로지니는 이제 남자같은 여자가 아닌, ‘여자같은 남자’가 분명해 보여요. 요즘 하이힐 신고 춤추는 남자 댄스 문화도 생겨나고 있거든요.
왜 이러는 걸까요? 남자들은 이제 여자가 되고 싶을까요?
이에 대해 자기 견해를 쓴 글들이 아주 많아요. 글쎄요. 많이 뒤져봤는데, 우리의 세태를 짚어주는 가슴에 와닿는 글은 아직 찾지 못했네요.
단지 보이는 부분을 말하자면, 80년대와 지금, 우리는 공통적으로 ‘펑크(Punk)’의 시대를 살고 있어요. 펑크는 파격의 시대, 아방가르드의 시대를 의미하죠. 옷은 전위적이고 해채적이 되고, 성의 구분같은 고리타분한 격식은 쉽게 문화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요. 남자들은 여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세상의 틀을 깨고 싶은 거에요. 뜻 밖의 매력, 뻔하지 않은 매력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시대랄까요?
이렇게 패션 리더들은 문화적으로 충격을 주지만, 실제 패션에서 남자들은 역시 남자다와요. 구찌를 입은 래퍼 타이니 템파의 모습은 구찌 모델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훨씬 남자다운 느낌이랍니다.
이것이 현장과 런웨이의 차이랄까요? 지난 2011년판 여성 Celine 블라우스를 입고 무대에 나타났던 카녜웨스트(Kanye West) 또한 굉장히 남자다왔답니다!
이런 충격적 앤드로지니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우리의 스트리트 웨어는 유니섹스가 되었죠. 남자나 여자나 다 비슷한 옷을 입어요. 작년에는 자라(Zara)에서 스트리트 패션을 흉내내기라도 하듯, 성 구분이 없는 유니섹스 라인을 내어놓기도 했으니까요.
고루하게 살기 너무 힘든 시대가 됐어요. 여자는 여자답게 살기 어렵고, 남자 또한 모든 걸 책임지기엔 서로 너무 가혹한 시대가 되었달까요? 젠더레스(Genderless: 성의 구분이 없는) 패션을 보면 기성세대로서 여러 마음이 들어요. 한편으론 멋진 파격의 시대를 헤쳐가는 젊은 친구들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들의 처지가 의미심장하기도 하구요.
오늘의 트렌드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구요?
글쎄요, 디자인에 적용하시라고 쓴 글은 아닌데,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 써봤어요^^;;
그저 이런 시대에는 마음을 열자구요, 마음을요.
담주에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