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그린과 시대정신
런던패션위크(남성)가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크레이그그린(Craig Green)은 첫날 힘차게 쇼를 열었답니다. 바로 지난달, 크레이그그린이 영국패션협회(The British Fashion Council)이 주관하는 The Fashion Award상을 탔던 지라 그의 쇼는 정말이지 세인의 관심이 모아졌죠.
크레이그 그린의 옷은 베트멍과 비교하면 가장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거 같아요. 베트멍은 위트와 똘끼 충만한 스타일, 톡톡 튀는 마케팅과 비즈니스로 인기를 모으는 브랜드라면, 크레이그 그린은 그야말로 정통파 디자이너거든요.
21세기의 오늘을 바라보고 진지한 시를 쓰는 사람이랄까요? 정말 멋진 건, 이런 시가 사람들한테 통한다는 거에요. 그의 옷은 이미 패피들에겐 필수템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스타들이 입고있는 그린의 옷과 거리에 나돌아 댕기는 그린의 옷을 몇 개 볼까요?




크레이그그린은 끈 장식이 많이 달린 코우트나 팬츠(닉우스터가 많이 좋아해용), 그리고 지난해 대박난 퀼팅 시리즈가 인기에요. 그의 옷들은 마치 지구가 멸망한 뒤, 뭔가 문명을 다시 세우는 순간에 입는 작업복이나 군복같은 느낌..? 매트릭스에서 시온사람들이 입는 옷같은 느낌..? 그런 쓸쓸하면서도 캐주얼한 멋이 있어요.
크레이그 그린은 언제나 폐허, 재난, 구조, 멸망 이런 어두운 코드로부터 영감을 끌어내는데요. 어떤 분들은 ‘아, 난 이런 심각한 거 싫어!’ 하실지 모르겠지만 때론 그런 심각한 것들이 바로 사람의 마음을 파고 든답니다.
“적어도 나한테는 불행함 같은 것에서만 영감이 생겨요.”
이 말은 80년대가 그 유명한 레이카와쿠보(Rei Kawakubo)가 했던 말이죠. 그녀는 정말 빈곤하게 찢어진 누더기 같은 저어지, 기모노들을 한 다발 디자인했는데, 이건 ‘빈곤의 미학(aesthetics of poverty)’이라고 불리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당시 이 옷에 ‘멋져, 죽여줘!’ 하며 거기 열광했죠.
지금은 바로 이런 옷이 먹히는 시대에요. 80년대와 지금, 대중들이 문화적으로는 풍요로우면서 경제적으로는 빈곤함에 지쳤던 그런 시기니까요. 흥미롭게도 크레이기 그린이 제일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누구냐면 바로 레이 카와쿠보랍니다. 하핫

크레이그 그린이 17-18 추동을 겨냥해서 선보인 옷들은 그의 그런 미학에 충실한 옷들이었어요. 좀 쉽게 3가지 포인트만 찝자면, 첫째, 빈티지한 해양구조대로부터 영감을 얻은 옷들이 있었구요.
구명조끼, 방수모, 트렌치코우트와 셔츠를 넘나드는 우비 같은 겉옷들(이건 정말 잘팔리겠던데요)은 옛 해양구조대의 스타일과 닮아있었죠. 이런 스타일은 런던패션위크에서 여러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핫스타일이었어요,
그리고 지난해 히트를 친 퀼트 시리즈를 잇게 될 패딩 코우트들은 이번엔 스모킹(smocking: 고무사등을 넣어 잡아당기는)을 가미한 스타일로 제안되었어요. 이것도 멋져요. 특히 후드 부분.
그리고 그의 옷에 언제나 엄숙한 코드로 종교적인 느낌이 가미되곤 하는데, 올해엔 좀 더 과감해졌어요. 옛 종교제사장들을 연상시키는, 혹은 교회 카페트를 연상시키는 스타일들이 있었거든요. 이 스타일도JW앤더슨이나 다른 디자이너들이 자주 시도하는 스타일.
그의 옷은 무언가 옷을 평면적으로 해체해서, 다시 끈으로 연결하는 작업들이 많은데, 그래서 그를 구조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답니다.
보통 우리가 어떤 쇼가 성공적이라고 얘기할 때에는 첫째, 그 디자이너의 색이 분명하고, 둘째, 커머셜한 가능성이 충분할 때에요. 크레이그 그린은 이 두 가지가 다 분명해 보여요. 지난해 포텐이 터진 만큼, 크레이그는 올해는 더 두근두근한 한 해를 보내게 되지 않을까요?
낼 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