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산의 미래
한국에서 ‘도매시장’의 의미는 오랫동안 직접 만들어 파는 ‘제조 도매’였다. 그러나 생산기반이 흔들리면서 ‘제조도매’는 점차 다른 생산자에게서 물건을 받아다 되파는 중간상(middlemen) 개념으로 변질되고 있다. 즉, 현재 동대문에서 판매되는 제품들 중 made-in-china와 made-in vietnam의 포션은 점차 늘고 있다. 아직까지 시장에는 제조 도매와 중간상이 혼재하고, 구매자 또한 도매시장의 제품을 대부분 ‘제조 도매’로 인식하고 있어 제품에 대한 의심이 깊지는 않다.
그러나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모든 바이어들은 언젠가 원생산자를 찾아가게 마련이다. 현재 도매시장의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먼저 점차 기반을 잃어가고 있는 ‘생산’의 문제부터 짚어보자. 이는 도매시장 뿐 아니라 한국의 생산기반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1.청년층이 사라진 생산업계
동대문 인근의 봉제업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선 언론에서도 여러 번 다루었던 바 있다. 사실 동대문 봉제업은 지금 일이 없어서 괴사되고 있는 게 아니라, 신규노동력이 유입되지 않아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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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이 생산자로 발벗고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그간 한국 제조도매 시장, 즉, ‘동대문 상품’의 강점은 단납기 소량생산/빠른 트렌드/가성비 등으로 압축된다. 즉, 빨리 빨리 다양한 물건을 저렴하게 만드는 데 그 강점이 있어왔다. 문제는 이런 생산구조는 매우 ‘노동집약적’이라는 것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이 발전하기 위한 구조는 무엇보다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은’ 인건비가 저렴하면서도 인구는 꾸준히 증가 중인 개도국에 국한된 이야기다. 한국의 경우 청년층 인구가 급격히 줄 고있으며 경제활동 인구 또한 2016년을 기점으로 떨어지고 있다. 사실 한국은 이미 ‘생산성 위기 국가’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추구해야 할 생산성이란 무엇일까? 같은 문제를 갖고 있는 국가들을 위해 OECD에서는 2015년 ‘생산성의 미래(The Future of Productivity)’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생산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는 곧 선진국형 생산성과 같은 의미로 통한다.
2.생산의 미래
현재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개도국에 생산기지를 마련한다는 것이 영원하지 않은 해법임을 깨닫고 있다. 개도국의 임금 또한 빠르게 인상될 것이며, 물류와 유통에 소비되는 ‘시간’이란 요소는 점차 즉각적인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습성에 배치되고 있다.
생산의 미래는 소비의 미래와 직결된다. 현재 소비의 미래는 두 가지 포커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첫째는 Customization, 즉 소비자 개개인이 원하는 디자인을 맞춤 구매한다는 것이요, 둘째는 Real Time, 즉,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면, 즉시 혹은 당일배송으로 물건을 받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그간의 생산 기반에서는 불가능했다. 이를 실현하려면 소비자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기업에도 지나친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혁신이 일어나면서, 이 두 가지 포커스는 놀랍게도 차근차근, 아니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화되는 중이다. 현재 소비의 미래에 발맞추어 생산의 미래 또한 Localized Production(현지생산)과 Customization(맞춤생산)을 정조준하며 발전하고 있다.
아디다스의 Knit for You는 고객이 매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니트를 디자인해 주문하면, 그날 저녁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현재 메리노울로 작업할 경우, 이 스웨터의 가격은 200유로 수준에 책정된다.

그런가 하면, 2016년에는 한 스타트업이 스스로 봉제하는 로봇 Sewbo를 출시했다. 그간에도 ‘자동화생산’이라는 기계 생산이 패션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솔루션이었다. 하지만 Sewbo는 인간 봉제원의 손길을 그대로 모방하여, 미싱에서 작업해내는 로봇이다. 즉, Sewbo는 사람처럼 미싱대 위에 앉아 사람대신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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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술들은 모두 실험단계다. 그러나 그간의 기술발전 추이로 볼 때, 실험에서 상용화되는 과정은 모두 의외로 짧았으며, 기술개발로 이뤄진 것들의 가격은 빠르게 낮아져왔다. 곧 저렴한 Custom 생산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은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다.
3.단계적 해법
각박한 현실과 꿈 같은 비전 사이에서, 지금 한국이 생산기반을 잃지 않기 위한 해법들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 그 단계적 해법으로 아래 2가지를 제안한다.
- 생산성에 기여하는 기술 혁신 장려
먼저, 노동집약적이지 않으면서 많은 산출물을 낼 수 있는 기술혁신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현재 청년층의 창업 트렌드 중 높은 생산성 도출에 기여하는 창업의 비중은 너무도 적다. 로봇을 이용한 창업은 IoT 생활편의와 교육에 집중되어 있다. 로봇 생산시대를 바라만 볼 것인지, 아니면 그 시대의 리더가 될 것인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장려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나뉠 것이다.
생산기술의 리더가 되면, 자연히 자국 노동자는 노동집약적 노동자가 아닌 고부가가치 노동자로 레벨업된다. 이탈리아의 경우 이탈리아 섬유산업이 거의 망해나가던 2002년 작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반전이 펼쳐졌다. 디지털 기술이 아니고선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두 부자가 ‘디지털 프린팅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그간의 섬유 프린팅은 C,M,Y,K 판을 떠서 찍는 여타 인쇄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최소한의 미니멈 수량이 필요했다. 그러나 디지털 프린팅 방식은 잉크젯처럼 염료를 원단에 분사하는 방식으로, 단 1야드도 출력이 가능하며, 아무리 복잡한 디자인도 분판방식에 비해 선명히 인쇄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탈리아에는 노동집약적이지 않은 다수의 일자리가 생겨났다. 이들은 직접 프린팅을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디지털 프린팅 기계를 관리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울러 디지털 프린팅 기술이 전세계로 확대되자, 이 기계를 다루던 숙련된 이탈리아의 노동자들은 고급인력이 되어 파견되기 시작했다.
생산혁신이 어느 나라에서 일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나라의 노동의 미래와 직결된다. 과연 한국의 젊은이들은 미래에 어떤 노동에 종사하고자 할 것인가. 생산성에 기여하는 기술 창업은 지금 한국 노동의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해법의 출발점이다.
- Made-in-Korea 정책
한국내 생산이 가진 노동집약적 환경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면, 한국에서 생산된 것들에 대한 부가가치가 인증되어야 한다. 실제로 자국생산품에 대한 인증제도로 생산업의 위기를 피해간 선진국은 적지 않다.
가장 성공한 사례는 Made-in-Itay 제도를 확립한 이탈리아였다. 현재 EU와 중복되는 법규정으로 혼선이 있기는 하나, 이탈리아 정부가 인증하는 Made-in-Italy는 기획부터 포장까지 전과정을 이탈리아에서 수행할 때에만 주어지는 특별한 인증라벨이다.
자국의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할 수는 없으면서, 동시에 저임금을 무기로 생산시장을 점유해오는 개도국들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탈리아는 ‘Made-in-Italy는 고급품’이란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다. 높은 임금으로 일하고, 그 부가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고자 하는 이탈리아의 해법은 빠르게 실효로 이어졌다. Made-in-Italy 제품의 판매수요가 늘면서, 중국에 공장을 세웠던 많은 이탈리아 명품들이 자국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고객이 원하는 건 결국 고급품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Made-in-Italy 정책은 이후 많은 국가들에게 큰 영감이 되었다. 일본 또한 Made-in-Japan 인증제도를 만들어 이탈리아를 바짝 추격했다. 현재 글로벌하게 Made-in-Italy와 Made-in-Japan 제품들의 위상은 높게 평가받는다. 얼마 전에는 뉴욕도 Made in NYC 라벨 제도를 도입하며 현지 생산의 부가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에 들어갔다.
한국에는 지금 딱히 Made-in-Korea 인증제도가 없는 실정인데다, 지금 현안과는 거리가 먼 전안법이 의무제로 도입되는 등 업계의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한 정책들이 혼선을 빚고 있으며, 한편에선 의도는 좋았으나 소비자 입장에서 그 의미가 모호한 ‘하이서울’ 인증제도가 함께 실시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이해되면서, 고임금 노동이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지도록 하는 제도가 시급하다.